영원히 지속되는 로맨스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누군가는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서로의 신뢰는 무너지고,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보다는 현재 관계를 비트는 불쾌한 감정만이 더 중요해진다.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중요한 감정들의 색은 사라지고 그것을 도저히 추억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다른 기억을 하기 시작하고 그 중요성도 달라져 버린다.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을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친구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는 애인의 그것과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대충 메우고 가벼운 농담만을 늘어놓을 목적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내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고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느낌을 받는 사이는 ‘언제라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내 생의 일부를 이 친구와 함께 보내겠다는 무언의 믿음과도 같다. 연인과 헤어질 때 사람들은 깊은 아픔을 겪지만,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질 때도 상처를 받는다. 만일 그 친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거나 혹은 내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라면 그 아픔과 고통은 연인을 잊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다. 과연 잊혀질 수 있는 일일까. 우리는 연인을 잊는 방법과 그 시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식거나 감정이 변해서 달라지는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는 마치 영원히 내 곁에 존재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변하고 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며, 신뢰는 냉정하게 무너진다. 연인이든 친구든, 잃어버린 누군가를 되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브로맨스는 마치 연인과 친구의 경계에 있는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남녀가 확보할 수 없는 어떤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관계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관계에 대한 환상이 부여된 것은 아닐까. 브로맨스의 관계는 친구이지만 사랑처럼 애틋하고 전우처럼 짙은 신뢰가 깔려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친구야말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연인만큼 짙은 감정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브로크벡 마운틴에서 두 남자 연인이 사랑하기 전에, 친구로 지낸 깊은 시간이 꼼꼼하게 전개하던 것을 기억하자. 그들의 사랑이 지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친구 즉 인간적인 신뢰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해 없이 그 사랑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연애초기에 실패한 경험들을 떠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신뢰였고, 감정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며 연인을 지키는 것은 친구와의 우정을 지속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늘 깨닫게 되지 않는가. 반대로 친구와의 관계 역시 연인을 대하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를 잃었을 때 사랑에 실패한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걸 알게 되지 않는가. 그렇게 브로맨스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은유가 된다.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는 것도 믿는 것도 두려워진 세계에서 상대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노력으로 지속되는 브로맨스는 결국 흔들리지 않는 관계에 대한 소망을 함축하고 있다. 내 등을 지켜줄 누군가 있다는 것, 그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불안하지도 겁이 나지도 않는 세계. 유일한 나의 편과 나 자신 역시 누군가의 유일한 편이 되는 이야기. 그것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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