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남자만큼 남자를 싫어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브라더 로맨스라고?” 아니나 다를까 가장 가까운 남자 동물에게 물어봤더니 일단 표정부터 구기고 본다. “왜 싫은데?” 내가 물었다. 이유나 들어볼까 해서. “그냥, 그냥 싫은데.” 더 물어봐야 따져봐야, 별반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저 단호한 얼굴. 남자들은 왜 그토록 서로 탐탁치 않아할까? 영화나 드라마 말고, 현실 세계에 브로맨스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니다, 다시 꼼꼼히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정녕 진심으로 서로를 싫어하나? 섣불리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방법을 깜빡 잊어버린 것 일지도 모른다. 그저 ‘싫더라’ 하는 말만 믿고 수긍하기엔 내가 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종로 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술에 취해 남자 둘이 팔짱 끼고 걷는 장면은 애교 수준이고, 그날엔 인도에 걸터앉아 어깨를 맞대고 누구 하나 술이 깰 때까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투 샷,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뒤뚱거리는 찐한 모습까지 모두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어느 날씨 좋은 주말 저녁, 나는 광화문에서 시작해 청계천 길을 따라 종로 방향으로 산책하다가 한 시간 동안 무려 다섯 팀의 남남 커플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약간 취해있었다. 그날은 좀 독특한 날이었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중년 남자 둘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상대방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로 둘이 동시에 버스에 오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얼굴이 벌건 채로 그저 실실 웃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욧시! 요옷시! 가자아!” 하며, 혹은 그 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소리들을 반복해서 질러대면서, 버스 문턱을 올랐다가 몸이 끼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보는 사람이야 어찌 되었든 당사자들만큼은 상대의 몸을 꼭 붙든 채로 참 즐거워 보였다. 


영화 [행오버] 

  

 알딸딸한 남자들이 만들어낸 애정 어린 컷들은, 말하자면, 이런 것 말고도 꽤 많다. 왜 그러는 걸까? 멀쩡할 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여도 우연히 손이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불쾌해하며 욕부터 하던 그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남자는 ‘원래’, ‘본능적으로’ 남자를 싫어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여자 역시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경계하니까.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친한 여자끼리라도 보기 힘든, 끈끈한 우정이랄까 뭐, 닭살 돋지만 그런 종류의 로맨틱한 관계는 분명 존재해 보인다. 요즘에야 ‘브라더 로맨스’라는 말이 말 그대로 젊고 아름다운 두 남자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해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몹시 힘겨워하다가 그들 간에 느끼는 애정(애틋한 감정)을 대변하는 단어로 주로 쓰이지만, 예전에도 그랬을까. 여성이 주된 소비층이기 이전의 ‘브라더 로맨스’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을 대변해주는 장르랄까. 

  좀 오래됐지만 비근한 예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그 시초로 들고 싶다. 남자들의 브라더 로망을 대변해 주는 것은 전쟁 영화가 그 몫을 톡톡히 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로맨스란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에 가서야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거창한 것이었다. 시시콜콜하게, 계집애마냥 ‘우리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에게 용납되지 않기에 겉으로는 싫다고 말하면서, 전쟁과 같은 극단적이고도 대의적인 명분이 충분한 상황을 빌어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맘껏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행오버]


  전쟁 영화뿐만이 아니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하는 것과는 달리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인색해서, 여러 영화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맘에 드는-남자에게 다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다호>의 주인공 마이크는 스콧에게 약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마스터>의 프레디 역시 우연히 배에 탑승했다가 만난 랭케스터와 나눴던 대화를 잊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조한 술을 핑계로 랭케스터를 찾아와 그것을 나눠 마시면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표시한다. 이른바 ‘브라더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에는 이처럼 무엇인가에 취해서 혹은 그 물건의 힘을 빌어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려는 남자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등장한다. 

  술에 취해 남자들끼리의 우정이 끈끈하다 못해 끈적끈적해질 만큼 솟구치는 영화로는 <행오버>만한 것이 없다. 총각 파티를 떠나는 차안에서 그들은 대체로 심드렁한 표정이다. 하지만 만취한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결혼식 주인공이 생사도 모른 채 사라졌다는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술에 취해 했던 행동들과, 그 만행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비로소 숨겨왔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무리 길게 이야기 한다 한들, 남자들에게 브로맨스에 대해 물으면 여전히 관심 없다는 투로 일관할 것이다.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결국 뻔 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남자에게는 브라더 간의 로맨스란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전할만큼 취하지 못해서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인성의 문장을 따라 표현하자면, 취해버리고 싶은데 완전히 취해지지는 않는 그런 감정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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