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6.30 장미는 장미로 불리지 않아도 - 베어 더 뮤지컬
  2. 2015.06.30 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3. 2015.06.30 브라더의 다양한 변주
  4. 2015.06.30 B급 브로맨스

장미는 장미로 불리지 않아도 - 베어 더 뮤지컬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치명적이다. 그것들은 모두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으면, 희생해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은 금기시되는 것을 욕망했으나 자신을 온전히 버릴 수 없었던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베어 더 뮤지컬]


  보수적인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피터와 제이슨은 비밀리에 교제 중이다. 소극적인 성격인 피터, 학교 킹카인 제이슨. 두 사람은 기숙사 안에서 남몰래 포옹하고, 키스한다. 그들의 사랑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온 세상에 자신의 사랑을 외치고 싶은 법. 피터는 커밍아웃을 하고자 하지만 제이슨은 거부한다. 그들의 사랑은 연습 중인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과 교차되며 전개된다. 


[베어 더 뮤지컬]


  가톨릭 고등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와 마약의 소재는 자극적이다. 하지만 뮤지컬 안에서 보여 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지극히 전형적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 또한 어딘지 따뜻하다. 이상한 일이다.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피터와 제이슨의 의도치 않은 커밍아웃 속에서도 친구들은 그들을 경멸하지 않고, 부모는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피터와 제이슨 두 사람은 불행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그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어 더 뮤지컬]

  

  피터와 제이슨은 사랑하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더불어 그것들을 자체적으로 제어하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들의 방황은 지극히 그 나이 또래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가진 생각은 자체 검열을 통하여 세상의 통념을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이미 닮았다. 거기에서 두 사람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한 면을 스스로 발견하고는 자신의 모습에서 실망을 하기 때문이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면서 피터와 제이슨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앞뒤 안보고 달려드는 사랑, 그 순수한 무모함과 다른 자신들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것이다. 장미는 장미로 불리지 않아도 그 빛깔과 향기는 여전하다.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거기 있던 사랑은 거기 있는 법이다. 피터와 제이슨 앞에 놓여 있던 사랑은 거기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잡지 못했다. 그들이 이미 어른의 문턱에 와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무모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 검열... 하지만 무모하게 굴지 못해서 괴로운 나이... 그들의 문제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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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남자만큼 남자를 싫어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브라더 로맨스라고?” 아니나 다를까 가장 가까운 남자 동물에게 물어봤더니 일단 표정부터 구기고 본다. “왜 싫은데?” 내가 물었다. 이유나 들어볼까 해서. “그냥, 그냥 싫은데.” 더 물어봐야 따져봐야, 별반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저 단호한 얼굴. 남자들은 왜 그토록 서로 탐탁치 않아할까? 영화나 드라마 말고, 현실 세계에 브로맨스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니다, 다시 꼼꼼히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정녕 진심으로 서로를 싫어하나? 섣불리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방법을 깜빡 잊어버린 것 일지도 모른다. 그저 ‘싫더라’ 하는 말만 믿고 수긍하기엔 내가 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종로 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술에 취해 남자 둘이 팔짱 끼고 걷는 장면은 애교 수준이고, 그날엔 인도에 걸터앉아 어깨를 맞대고 누구 하나 술이 깰 때까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투 샷,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뒤뚱거리는 찐한 모습까지 모두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어느 날씨 좋은 주말 저녁, 나는 광화문에서 시작해 청계천 길을 따라 종로 방향으로 산책하다가 한 시간 동안 무려 다섯 팀의 남남 커플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약간 취해있었다. 그날은 좀 독특한 날이었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중년 남자 둘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상대방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로 둘이 동시에 버스에 오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얼굴이 벌건 채로 그저 실실 웃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욧시! 요옷시! 가자아!” 하며, 혹은 그 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소리들을 반복해서 질러대면서, 버스 문턱을 올랐다가 몸이 끼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보는 사람이야 어찌 되었든 당사자들만큼은 상대의 몸을 꼭 붙든 채로 참 즐거워 보였다. 


영화 [행오버] 

  

 알딸딸한 남자들이 만들어낸 애정 어린 컷들은, 말하자면, 이런 것 말고도 꽤 많다. 왜 그러는 걸까? 멀쩡할 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여도 우연히 손이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불쾌해하며 욕부터 하던 그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남자는 ‘원래’, ‘본능적으로’ 남자를 싫어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여자 역시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경계하니까.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친한 여자끼리라도 보기 힘든, 끈끈한 우정이랄까 뭐, 닭살 돋지만 그런 종류의 로맨틱한 관계는 분명 존재해 보인다. 요즘에야 ‘브라더 로맨스’라는 말이 말 그대로 젊고 아름다운 두 남자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해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몹시 힘겨워하다가 그들 간에 느끼는 애정(애틋한 감정)을 대변하는 단어로 주로 쓰이지만, 예전에도 그랬을까. 여성이 주된 소비층이기 이전의 ‘브라더 로맨스’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을 대변해주는 장르랄까. 

  좀 오래됐지만 비근한 예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그 시초로 들고 싶다. 남자들의 브라더 로망을 대변해 주는 것은 전쟁 영화가 그 몫을 톡톡히 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로맨스란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에 가서야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거창한 것이었다. 시시콜콜하게, 계집애마냥 ‘우리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에게 용납되지 않기에 겉으로는 싫다고 말하면서, 전쟁과 같은 극단적이고도 대의적인 명분이 충분한 상황을 빌어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맘껏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행오버]


  전쟁 영화뿐만이 아니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하는 것과는 달리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인색해서, 여러 영화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맘에 드는-남자에게 다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다호>의 주인공 마이크는 스콧에게 약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마스터>의 프레디 역시 우연히 배에 탑승했다가 만난 랭케스터와 나눴던 대화를 잊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조한 술을 핑계로 랭케스터를 찾아와 그것을 나눠 마시면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표시한다. 이른바 ‘브라더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에는 이처럼 무엇인가에 취해서 혹은 그 물건의 힘을 빌어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려는 남자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등장한다. 

  술에 취해 남자들끼리의 우정이 끈끈하다 못해 끈적끈적해질 만큼 솟구치는 영화로는 <행오버>만한 것이 없다. 총각 파티를 떠나는 차안에서 그들은 대체로 심드렁한 표정이다. 하지만 만취한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결혼식 주인공이 생사도 모른 채 사라졌다는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술에 취해 했던 행동들과, 그 만행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비로소 숨겨왔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무리 길게 이야기 한다 한들, 남자들에게 브로맨스에 대해 물으면 여전히 관심 없다는 투로 일관할 것이다.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결국 뻔 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남자에게는 브라더 간의 로맨스란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전할만큼 취하지 못해서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인성의 문장을 따라 표현하자면, 취해버리고 싶은데 완전히 취해지지는 않는 그런 감정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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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의 다양한 변주

브로맨스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로, 남성 간의 애틋한 감정 또는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나는 브로맨스라 함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흔히들 브로맨스라 함은 동성간의 사랑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한테 브로맨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처음 떠오른 생각은 ‘동성애 아니냐’는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브로맨스를 의미함에 있어 ‘브라더’ 즉, 피를 나눈 ‘형제애’라는 단어를 먼저 내세우고 싶다. 이성간의 교제를 하다보면 아무리 깊은 관계라 할지라도 이성보다도 동성끼리 더 소통이 잘되는 이야기코드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헤쳐 온 수많은 고난과 역경들이 남성과 남성, 즉 동성은 이성 관계와 달리 말하지 않아도 사회적 유대관계를 통하여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듯이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숱한 사회적 경험을 헤쳐 온 남성이 남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이 소통이 되는 이야기소재라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며 성적인 농도 짙은 농담 같은 이야기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으로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소통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잉꼬부부라 할지라도 남편은 자신이 남성으로 살아가며 사회로부터 받은 억압을 소통함에 있어 부인보다도 친구, 스승, 상사, 동료 등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부인이 소통의 대상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 같은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숱한 사회적 경험을 한 동질의 남성이 유대관계가 더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남성’을 넘어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도 더하고 싶다. 형제라 함은 피라는 성질을 나눈 남성들이다. 피라는 것은 가족관계를 뜻할 수도 있으나, 필자는 앞서 칼럼에서도 가족이라 함은 ‘동반자로서의 여정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야 형성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에 비추어본다면 똑같은 공식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즉, 형제라 함은 같은 남성으로서 동반자라는 여정의 통과의례를 거친 둘 이상의 관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반자로서의 여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맨스는 이성간의 ‘사랑’ 보다도 남성적 사회적 동질감으로 얻어지는 유대관계와 남성으로서, 동반자로서의 여정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 형성되는 진한 형재애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맨스’ 하여금 이것은 혈연 그 이상의 형재애로 아니면 동성애로, 동료애로 확장될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M.Butterfly를 본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 부인의 여주인공 ‘송 릴링’의 도도하며 우아한 자태에 매료되고 ‘송’과의 만남이 계속 될수록 동양 여성의 신비로움에 빠져들며 그녀와의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르네 갈리마르는 송 릴링이 스파이로서 여성으로 변장한 남성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송 릴링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의 길에 이르게 된다. 


뮤지컬 [M.Butterfly] 공연사진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며 르네갈리마르의 사랑을 하나같이 응원했다. 그 이유가 과연 동성애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이렇게 만든 슬픈 사회적 관계 때문이었을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관객이 르네갈리마르를 응원하게 된 이유는 르네 갈리마르라는 남성에게 있어 송 릴링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남성만의 깊은 고독을 남성으로서 공유할 수 있으며 여성의 역할까지도 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르네갈리마르는 송 릴링에게 여성과 얘기하는 듯한 은밀한 이야기 소재에서부터 남성들이 겪는 사회가 요구하는 명예욕에 대한 이야기 소재 등 모든 것을 소통한다. 이것을 완벽에 가까운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필자는 이것 또한 ‘브로맨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즉, 브로맨스라 함은  동료애, 형제애, 동성애로 모두 확장될 수 있으며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같은 남성으로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 온 여정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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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브로맨스

<펄프픽션>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리고 <킹스맨>  


일반적으로 B급 영화는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나 A급 영화와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의미한다. B급 영화의 탄생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이루어졌다. 불황이 닥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헐리웃 스튜디오가 저예산으로 단시일 안에 수익을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극장 끼워 팔기 상영에 적합한 영화를 다량으로 생산하게 된다. 이렇듯 끼워 팔기용 저예산 영화가 대량 양산됨에 따라 B급 영화의 양적 기원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B급 영화 [B movie, -級映畵] (영화사전, 2004. 9. 30., propaganda)


영화 [펄프픽션]


시간이 흘러 영화 산업의 부흥기를 지나오면서 B급 영화는 단순히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저예산 영화를 의미하는 것에서 나아가 주류 영화가 포용하지 못하는 대안적이고 키치적인 내용을 담는 일정한 ‘장르’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헐리웃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경우 상업적인 규모에서나, 감독의 입지로서 주류의 감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기원은 철저히 B급 영화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 그의 초기작 <펄프픽션>은 영화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브로맨스’의 관점에서도 매우 기념비적인 B급 영화이다. 이 작품 속 존트라볼타가 분한 ‘빈센트’와 사무엘 젝슨이 분한 ‘줄스’는 특유의 끈끈한 브로맨스십을 바탕으로 함께 인질극과 모종의 ‘우발적 살인 사건’에 동참하게 된다. 이들은 같은 조직에 속해 있으며, 조직의 보스에게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들인 동시에, 특유의 모자람을 바탕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애틋한 관계는 서로의 결핍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이는 B급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서스펜스 넘치는 느와르풍 인질극에서 시작해, 좀비물로 끝나는 대표적 B급 감성의 영화이다. 이 영화 속 세스(조지 클루니)와 리차드(쿠엔틴 타란티노)의 경우 <펄프픽션>의 빈센트와 줄스의 관계양상과 유사한, 브로맨스십을 형성하고 있다. 


친 형제인 세스와 리차드는 무자비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매정한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바보처럼 비춰질만큼 순박하기도 하다. 또한 형제로서 서로의 안위를 매우 걱정해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등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갖춘 캐릭터들이다. 앞서 언급한 <펄프픽션>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분한 것도 이러한 캐릭터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 두 B급 영화에서만 이런 양상의 브로맨스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킹스맨]


대표적 B급 영화 <킥애즈>를 연출한 매튜본 감독이 콜린 퍼스와 함께 첩보물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올 상반기 가장 흥행한 영화중 하나가 되었다. 이 영화는 감독이 <킥애즈> 속에서 보여주었던 B급 영화의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A급의 세련된 화면과 액션, 007로 대표되는 액션 영화의 고전적 스토리라인을 조합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해리(콜린 퍼스)와 애그시(태론 에거튼)의 경우 앞서 말했던 비주류로서의 남성 주인공 둘이 동료로 뭉쳐, 끈끈한 동지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의 작품들과 같은 양상의 브로맨스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아가 이 작품 속에서 둘은 사제의 관계와 ‘부자의 동일시’의 경지 까지 느껴질만한 성장기를 첨부함으로써 B급 장르적 코믹한 브로맨스십에서 모종의 감동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세련되게 장치해 놓았다. 이는 B급 영화의 장르적 발전이자, B급 영화 속 브로맨스가 어떤 양상으로 응용되어져 왔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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