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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31 완독의 즐거움 BEST5

완독의 즐거움 BEST5

  은행이나 우체국 같은 공공 기관에 무작정 들어가 대기 번호표 뽑고 앉아 있기. 얼음 가득 담은 세수 대야에 발 담구고 선풍기 바람 쐬기. 수박이나 참외 같은 수분 많은 과일을 골라 화채 만들어 먹기. 자주 샤워하고 취침 시 죽부인 안고 자기. 

  위의 문장들은 “더위를 피하는 〇〇가지 방법”을 검색하면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노하우를 옮겨 적은 것 이다. 모두 짧은 시간 내에 체내의 열기를 식혀준다는 점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은 방법들이다. 그러나 누구나, 즉시, 따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위의 조치들을 직접 실행으로 옮겨보면, 은근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가장 오래된 노하우인 ‘공공기관 대기표 스킬’은 수년 전 공공기관 냉난방금지법이 생겨나면서 단박에 그 효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세수 대야에 얼음을 가득 채워 넣고 발을 담구는 방법은? 시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음을 얼리는 과정부터, 찬물을 섞어 물이 튀지 않도록 대야에 잘 쏟아 넣는 과정, 얼음 때문에 차가워진 세수 대야와 실내의 더운 공기가 만나 대야 표면에 생성된 물은 바닥으로 줄줄 흐르고, 얼음이 녹아 물이 미지근해지면 바닥에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퉁퉁 불은 발을 이끌고 뒤뚱거리며 화장실까지 가야하는 뒤처리 과정까지. 생각만 해도 식었던 땀이 다시 송글, 이마에 맺힐 것만 같다. 그럼, 화채는? 1인 가구에서 수박을 사 먹는 것은 몇 끼의 식사를 포기해야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선택이다. 하물며 과일 화채라니. 게다가 죽부인? 그것은 유치원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본 이후로는 티브이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건인 것을. 

  불평만 늘어놓다가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래서 쟤는 뭘 어쩌자는 거야,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나 죽겠는데!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음, 사실부터 고백하자면, 뭔가 파격적인! 한 번도 본적 없는 새로운! 나만의 썸머킬링,킬링타임 노하우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해야할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해지면,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방법!’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하면 할 수 록, 더울 땐 더워하는 게 정상이지, 왜 자꾸 시원하려고 쓸대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나 하는 식의, 마치 이 한 세상 하직하려는 사람이 떠올릴 법한, 거대한 체념만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스멀스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의례, 잔고 끝에 악수를 두고야마는, 그 고질병이 돋은 것이다. 여하튼, 이제는 예전처럼 공공 기관에 의존해 에어컨을 쬘 만큼 냉방기가 희소성을 가지는 세대도 아니고, 집집마다 개인용 에어컨이 설치되어있거나, 하다못해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진 커피 전문점에만 들러도 문명의 시원한 이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덥다고 자꾸 무언가를 하는 것 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도무지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할 생각이 아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저 에어컨 밑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시간아 흘러라 흘러, 조금만 더 버티면 하늘이 높아지고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흘러라 시간아, 하는 수밖에. 

 아래 소개하는 책들은 그 인내의 시간을 함께해줄 킬링타임, 타임킬러 도서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기에 감히, ‘시간 학살자’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몇 독자들에게는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만 하는 독서 경험을 선사 해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독서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완독의 즐거움’이(여기서는 비판 없이 읽는 독서법인 완독(玩讀)이아니라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 읽는다는 뜻의 완(完)독으로 사용하였다)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어렵건 쉽건 간에 손에 쥔 책 한권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는 기쁨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책장을 덮고 책꽂이에 다 읽은 책을 다시 꽂아 둘 때면, 어딘지 모르게 빈 것만 같았던 나의 지성이 채워지는 듯한, 지적 풍요로움 마저 얻어갈 수 있다. 그럼 이제, 누구의 의견도 묻지 않은, 그저 필자만의 경험만으로 정해진, 무더운 여름도 잠시 잊게 해줄 만큼 잘 읽히고, 그래서 완독의 즐거움까지 챙겨갈 수 있는, 장르 불문! 일석이조!의 책들을 소개한다. (가나다순)



1. 『보다』, 김영하



  김영하의 산문집.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산문 또한 소설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화두들을 김영하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산문을 읽는 즐거움은 그의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기에 안성맞춤.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이전에 출간된 산문집들을 일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랄랄라 하우스』, 『포스트잇』, 『네가 잃어버린것을 기억하라』등이 있다. 산문 시리즈인 『보다』는 현재 속편인『말하다』까지 출판되어있다.



2. 『자학의 시』, 고다 요시이에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네 컷 만화 자학의 시. 단 네 컷만으로 이렇게나 커다란 감동을 선사 할 수 있으리라곤 읽기 전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백수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사이에서 펼쳐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깔깔거리다가 1권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계속 읽으면 눈물을 멈출 수 가 없을 것 같은 슬픈 예감 때문에 2권을 펼치기가 두려워 그만 덮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읽고 싶은 감정을 참을 수 없는, 기괴한 정서적 체험을 겪게 하는 책. 하지만 결국 끝까지 보게 될 것이다. 



3. 『초조한 도시-사진으로 보는 도시의 인문학』, 이영준



  제목에는 인문학 분야라고 쓰여있지만, 인문학 보다는 미술 분야에서 더 유명한 책. 실제로 이영준 작가는 미술 분야에서 비평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독특해서 어떨때는 그로테스크 하게 느껴지기도하는 ‘한국형 도시’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도시의 한 면을 포착하여 사진으로 보여주고 그에 대한 사유를 모아 묶어낸 책. 이미지가 압도적이어서 금방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완독 후에는 늘 같게만 느껴지던 도시가 어딘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1996년 5월,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한 18명의 행적을 담은 책. 기자 겸 작가인 존 크라카우어가 등반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아 그날의 일을 회상의 형식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해낸 책이다. 등반대의 행적이 너무나 생생해서, 읽는 사람들까지 실제 에베레스트 등반에 참여한 것처럼 추위를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전해오는 긴박함 때문에 한번 들면 내려놓을 수 없다. 


  

5. 『허삼관 매혈기』, 위화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허삼관 이야기. 솔직히 영화의 여파로, 이 소설이 평가 절하될까봐 걱정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남들 보다 못한 건 참아도, 남들 다 하는 것 못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허삼관의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한 번 읽어 주시기를. 분명 읽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될 책이지만, 혹시 중간에 잠시 쉬게 된다면 그건 아마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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